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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江倉)

집필자 :
정진술
강창(江倉)
① 고려・조선 시대에 강변에 설치하여 각 지방에서 거둔 세곡(稅穀)을 임금이 있는 도성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할 때까지 보관하여 두던 창고.
② 조선시대에 전국의 세곡을 거두어들이던 서울 한강의 창고. 흔히 숭례문 밖의 용산강에 있던 풍저 강창(豐儲江倉), 서소문 밖의 서강에 있던 광흥 강창(廣興江倉)을 일컬었다. 【용례】 “진무・내금위・선전관・사복 등을 보내어 성 안팎과 강창을 순행하면서 경수와 순관의 순찰 상황을 살피게 하였다.”[遣鎭撫 內禁衛 宣傳官 司僕等 巡行城內外及江倉 探察警守與巡官] [『세조실록』 10권, 3년, 12월 11일(신축) 1번째 기사].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수로(水路)가 운송로로 중요시되었다. 운송 화물은 세곡이 중심이었고, 이 세곡은 내륙의 주요 하천이나 연해안 부근에 집적(集積)되어 서울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연해안 또는 하천 연변에는 창고가 마련되어 일정 기간 세곡을 보관하였는데, 연해안의 창고를 해창(海倉), 하천 연변에 설치된 것을 강창이라 하였다.
강창의 설치는 고려시대 한강 연변에 설치된 충주의 덕흥창(德興倉), 원주의 흥원창(興原倉)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강창에서는 남한강 유역 일대의 세곡을 수납, 운송하였다.
강창의 기능은 조선시대에 조운제(漕運制)가 정비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강창의 기지로서 한강과 예성강이 주목되었다. 즉, 덕흥창의 옛터에 경원창(慶原倉)을 설치하고, 이어 세조 때 가흥창(可興倉)으로 확장하였다. 가흥창은 경상도 지방과 충청북도 일대의 세곡을 수납하여 한강 수로로 경창에 운송하였다. 그리고 흥원창 역시 기능을 복구시켜 강원도 남부 지방의 세곡을 보관하였다.
한편, 춘천에 소양강창(昭陽江倉)을 새로이 설치해 춘천 등지의 세곡을 수납토록 하였다. 그리고 예성강의 수로가 새로이 주목되어 강음에 조읍포창(助邑浦倉)이, 배천에 금곡포창(金谷浦倉)이 설치되어 황해도 지방의 세곡을 수납, 운송하였다.
이들 강창들은 가흥창을 제외하고 16세기 이후로 기능이 크게 약화되어 17세기 이후에는 철폐되었다. 충주의 가흥창도 17세기 이후로 기능이 약화되었으나, 19세기까지 창고는 계속 설치되어 있었다.
출처 및 참고문헌
○ 참고문헌 : 『경국대전』. ; 『세조실록』.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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